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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추천] 충분히 슬퍼할 것

by 꼬랑이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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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슬픔 #상담 #우울 #에세이 #그림에세이 #극복 #성장

그림 에세이어서 간단하게 읽는 것이 가능하다.

엄마에 대한 내용.

더 넓게는 가족의 죽음에 대처하며 성장해 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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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닿는 말도 있었고 슬픈 장면도 많았다.

작가가 대학생 4학년 시기. 작가의 생일에 어머니가 쓰러지는 일이 발생한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안타깝다.

어머니는 작가(하리)에게 전화했고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후 일어나지 못하신다.

버스 정류장에 어머니는 쓰러져 계셨고 누군가 신고한다.

하지만, 왜인지 신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누군가 신고한다.

이때 구급대원이 출동하여 병원에 이송하였으나

<취객입니다.>라고 말한다.

때문에 어머니는 방치되었고

빠른 조처가 무엇보다 중요한 뇌출혈이었기에 예후가 좋지 않으셨다.

나라면 정말 화가 날 것 같은 상황.

그 상황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

중환자실에서 엄마를 만나지만,

"엄마를 만나면 만날수록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모래알처럼 자꾸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라는 표현 역시 슬펐다.

*

상담을 받고 실망한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면서 병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을 잦게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여러 병원을 오간다. 이를 병원 쇼핑(?)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다양한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맞는 의사를 찾는 것이다.

의사들은 상담사가 아니기에 때로는 불친절하게 여겨진다.

또한, 10분, 3분 만에 진료를 종료하고 약을 처방하는 경우도 많다.

또, 전문 상담 기관을 찾더라도 원하는 말을 듣지 못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방문하는 탓도 있지만, 분명 제대로 된 기관이 많지 않은 탓도 있다.

사소한 말이나 일에 실망하기도 하고 상처를 쉽게 받는다.

그것은 그만큼 병원이나 센터를 방문하기 전에 많은 용기를 지니고 방문했기 때문이다.

내담자의 입장에서도 상담사의 입장에서도 모두 이해가 간다.

그렇기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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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때부터 기쁘고 좋은 일은 축하하지만, 슬픈 일은 암묵적으로 외면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느낄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상처 앞에서 괜찮아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것이다."

대부분 그렇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자기 위로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상에는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있다. 슬픈 것= 나쁜 것이라고 학습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픈 것=나쁜 것이 아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슬픈 것이 나쁜 게 아니라고 배운다.

모두 우리의 감정이고 슬픔이 있어 기쁨도 있으며 슬픔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렸을 적부터 슬픔의 감정을 외면받았고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슬픔을 살아가며 마음속에 축적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병이 되어 터진다.

이를 잘 알면서도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정말 내밀한 슬픔을 전하는 것은

부끄럽고

싫은 일로 여겨진다.

"나중에 먹어도 맛은 있지만, 바로 먹었을 때 만큼 맛있지는 않다.

슬픔도 마찬가지다."

그냥 마음에 들었던 표현이었다. ^^,

슬플 때 쌓아두지 않고 바로 슬픔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고 토해내자는 의미이다.

 
 

"하지만 내 상처를 마주하고 나니 타인의 슬픔도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도 그렇다.

슬플 땐 내가 가장 불행하고 슬픈 것 같고. 나만 슬픈 것 같다.

다른 이의 아픔을 보고 공감하지 못하고 "겨우 저 일로 고민을?", "그게 뭐?" 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 상처를 마주하지 않아서 타인의 슬픔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걸까? ㅋ-ㅋ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내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타인의 고민이나 상처, 슬픔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늘 없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특유의 밝음과 긍정."

작가는 그렇게 말하며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어딘가에는 분명 그늘이 있었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밝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어둠이 있고 그것을 그냥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냥 드러내는 게 싫을 수도 있고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정말 밝은 이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어딘가 한 구석에는 분명 그늘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늘 없이 완전히 밝아 보이는 이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아무도 그늘을 눈치 채지 못할 테니까.

(여담이지만, 문빈 소식을 들었을 때 헛소문인 줄 알았다.

텔레비전에서 몇 번 보지는 않았으나 너무 밝아 보였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주위에 더 신경을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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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슬펐던 에필로그 장면이다.

"새로 이사온 집에 엄마가 놀러와 신나서 집을 구경시켜주었다.

하자가 있는 것도 깨알같이 고자질했다."

이 부분이 너무 슬펐다.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누가 내게 나쁜 짓을 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달려가서 괜히 투정부리고 이르고 싶은 대상이 엄마이니까.

꿈에서나마 엄마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러쿵저러쿵 투정을 부린 작가의 마음이 공감 갔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내가 마음 놓고 온전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그리고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들어줄 사람이 없어졌다는 걸 다시금 상기했을 거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한편으로는 내게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내 투정을 들어주는 인물인데

엄마는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엄마에게 그런 대상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고 원래 그냥 사라지던 엄마가 꼭 안아주었다."

"이 책을 만들며 엄마와 보았던 영화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죽어 천국에 가게 되고 부인이 이승에서 그림을 그리면 주인공은 저승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내 그림도 엄마가 있는 곳까지 닿았으면 좋겠다."

가족, 친밀한 이의 죽음에 대하여 다룬 에세이다.

에세이는 본래 잘 보지 않는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이며 그림 에세이어서 흥미롭게, 또 공감하며 볼 수 있었다.

'공감'은 내가 겪지 않은 일도 내 일인 것처럼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친밀한 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하리 작가의 에세이를 통해 슬픔과 우울을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방법에 대해

깊게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난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_^